
낮 졸림과 집중력 저하가 함께 있다면
“충분히 잔 것 같은데 낮만 되면 잠이 쏟아집니다.” “졸린 것도 문제지만 일을 시작하기 어렵고, 자꾸 깜빡하고, 집중도 잘 안 됩니다.”
“혹시 제가 성인 ADHD인 걸까요?” 기면증이나 과도한 주간졸림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생각보다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낮에 계속 졸리면 단순히 잠만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머리가 맑게 유지되지 않으면서 집중하기 어렵고,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실수가 늘고, 기억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인 ADHD의 부주의 증상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실제로 기면증 환자에서 ADHD가 일반인보다 더 흔하게 동반된다는 연구들이 있으며, 2024년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기면증 환자의 약 25%에서 ADHD가 동반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모두 ADHD인 것도 아니고, 기면증 환자의 집중력 저하가 모두 졸림 때문인 것도 아닙니다.
두 질환의 증상이 서로 겹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먼저인지 차근차근 구분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기면증인데 왜 집중력이 떨어질까요?
기면증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과도한 주간졸림입니다.
충분히 자려고 노력해도 낮 동안 깨어 있는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회의나 수업처럼 자극이 적은 상황에서는 잠이 갑자기 쏟아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제1형 기면증에서는 각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오렉신(히포크레틴)을 만드는 신경세포가 소실되는 것이 핵심적인 병태생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제2형 기면증은 대부분 오렉신 수치가 정상이며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낮 동안 각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면 뇌가 집중력과 실행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환자분들은
- 책을 읽어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고
- 회의 중 집중이 흐트러지고
-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 어렵고
- 깜빡하는 일이 많아지고
- 중요한 일을 계속 미루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만 보면 ADHD와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ADHD와 기면증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한 가지 중요한 단서는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가입니다.
ADHD는 성인이 된 뒤 갑자기 생기는 질환이라기보다 발달 과정에서 시작되는 신경발달질환입니다. 따라서 성인 ADHD를 평가할 때는 최근의 집중력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함께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부터
- 수업시간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으며
-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일이 반복됐고
- 여러 환경에서 비슷한 문제가 지속됐다면
ADHD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반대로 예전에는 집중력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심한 낮 졸림이 시작된 이후부터 집중력과 실행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면, 먼저 수면 문제의 영향을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기면증과 ADHD가 실제로 함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료에서는
졸림 때문에 집중을 못 하는 것인지, ADHD가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인지
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면증과 ADHD가 동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면증과 ADHD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들을 종합하면 기면증 환자에게서 ADHD가 일반인보다 더 흔하게 보고됩니다.
다만 연구마다 동반율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특정 숫자를 모든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기면증의 심한 졸림 자체가 ADHD 평가척도의 부주의 항목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검사상 ADHD 증상이 많다고 나왔다고 해서 바로 ADHD라고 결론짓기보다, 수면시간과 낮 졸림, 기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 같은 다른 수면질환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반대로 기면증 치료를 통해 졸림이 충분히 좋아졌는데도
정리하기 어렵고,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거나 산만한 증상이 계속된다면
그때는 ADHD가 별도로 동반되어 있는지도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ADHD 약을 먹으니 덜 졸리던데요?’
이 역시 두 질환을 혼동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ADHD 치료에 사용하는 일부 중추신경자극제는 각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기면증의 주간졸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ADHD로 진단받아 약을 복용한 뒤 “집중력도 좋아졌고 졸림도 줄었습니다.” 라고 느꼈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원래 문제가 ADHD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기면증 치료로 졸림이 줄어들면서 집중력까지 상당히 좋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약에 대한 반응만으로 두 질환을 구분하기보다는 증상의 시작 시점과 양상, 야간수면, 주간졸림을 함께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면증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집중력이 떨어진 것보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함께 있을 때는 수면질환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충분히 자도 낮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졸립니다.
수업이나 회의, 대중교통에서 자신도 모르게 잠듭니다.
짧게 낮잠을 자면 한동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잠들거나 깰 때 가위눌림이 자주 나타납니다.
잠들 무렵 매우 생생한 꿈이나 환각 같은 경험을 합니다.
특히 웃거나 놀라거나 감정이 크게 움직일 때 턱이나 목, 무릎 등에 갑자기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있다면 제1형 기면증의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기면증 검사는 어떻게 하나요?
기면증이 의심된다고 해서 증상만으로 바로 진단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현재 수면시간이 충분한지 확인하고, 수면부족이나 수면무호흡증, 약물 등 주간졸림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을 함께 살펴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야간 수면다원검사(PSG)를 시행한 뒤 다음 날 다중수면잠복기검사(MSLT)를 이어서 시행합니다.
야간 수면다원검사에서는 실제 수면시간과 수면단계, 호흡 상태 등을 확인합니다.
다음 날 MSLT에서는 약 2시간 간격으로 여러 차례 낮잠 기회를 주면서
얼마나 빨리 잠드는지
그리고
잠든 뒤 REM 수면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나타나는지
를 측정합니다.
제1형 기면증에서는 임상 양상에 따라 뇌척수액의 오렉신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진단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제2형 기면증은 뚜렷한 생체표지자가 없기 때문에 임상증상과 야간 PSG, MSLT 결과를 함께 해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집중력 저하가 있다면 ‘ADHD냐 기면증이냐’만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진료에서는 자꾸 둘 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환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심한 주간졸림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사람도 있고, ADHD가 있으면서 수면부족이 겹쳐 증상이 심해진 사람도 있으며, 기면증과 ADHD가 실제로 함께 존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진단명을 빨리 하나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밤에는 어떻게 자고 있는지,
낮에는 얼마나 졸린지,
집중력 문제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특히 성인 ADHD를 의심해 진료를 받고 있지만 “졸림” 자체가 매우 심한 분이라면 수면 문제를 한 번은 같이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면증 치료 후 졸림은 좋아졌는데도 일상생활에서의 집중력과 실행기능 문제가 계속된다면 ADHD를 별도로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낮 졸림과 집중력 저하를 함께 보는 이유
수면과 집중력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잠이 부족하거나 각성을 유지하기 어려우면 집중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집중력 문제를 잠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졸린가?”와 “집중하기 어려운가?”를 따로 묻기보다 두 문제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자는데도 낮 졸림이 심하고,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면 단순히 의지가 부족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의 수면과 각성 상태에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ADHD 같은 다른 문제가 함께 있는지를 차근차근 확인해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내용이며, 기면증과 ADHD의 진단 및 치료는 개인의 증상과 검사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재하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82 신현프라자 6층
인천지하철 1호선 예술회관역 3번 출구 앞
※ 2026년 11월 1일부터 의료기관명이 ‘굿나잇 슬립의원’으로 변경될 예정입니다.
참고자료
- Ren J, et al. ADHD in narcolepsy: A closer look at prevalence and ties.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2024.
-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 Narcolepsy.
- Narcolepsy and psychiatric comorbidity: a review of the literatur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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